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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안나푸르나 라운드 트래킹]

[NEPAL] 1부_ ANNAPURNA ROUND TRRKKING 준비, 1-3일차

 

 

 

 

 

<포카라 페와호수에서 보이는 안나푸르나 1봉(좌 8,091m)와 마차푸차레봉(우 6997m)>

 

 


네팔 포카라에 도착한지 2주가 지나갔다.

트래킹을 위해 긴 여행에서 지친 체력 회복의 시간이 필요했고, 우기가 끝나간다고 하니 여유를 가지고 기다렸다.

여러 사정상 9월 25일 트레킹 시작일을 결정하고 나니, D-DAY가 가까워 질수록 더욱 세차게 천둥,번개를 동반한 비바람이 거세다.

남미 파타고니아 트레킹 시 날씨가 도와주지 않아서 비바람에 고생한 기억 때문에 약간 긴장 되기도 한다.

 

더군다나 14일간의 산속 생활이 아니던가?

3,4일도 아닌 14일간 산속을 헤메이며 걸어야 한다는 사실도 쉽게 긴장을 풀게 하지는 못했다.

 

지금까지 내 인생에서 山은 주요한 변화의 계기를 주었다.

 

대학시절 세계관의 변화와 사회적 책무를 짊어져야 한다는 당위를 받아들이는 것이 감당이 되지 않았을 때

지리산 화엄사 계곡은  훌륭한 피신처가 되기도 했고,

후배들과 얼떨결에 오른 지리산 천왕봉에서

그림 같은 노을을 배경으로 휘날리는 대학 깃발에 큰 신심을 얻기도 했다.

 

9년 전 내가 짊어진 삶의 짐이 무거워 무기력하게 있을 때에도 북한산을 오르내리며 30대 삶에 대한 용기를 주었고,

15년 이상 즐겼던 담배를 끊을 수 있는 용기를 주기도 했다.

 

이제 1년여의 여행을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히말라야 안나푸르나는 나에게 어떤 의미가 될 지,

어떤 메시지를 던져줄 지 편안히 山의 품에 기대본다.

 

   

 

먼저 우리가 트래킹 하는 안나푸르나는 히말라야 산맥 중앙에 있는 <ANNAPURNA CONSERVATION AREA>를 이야기 한다.

 

참고로 히말라야는 주로 네팔과 티베트 국경 사이에 펼쳐져 있는 산맥을 일컫는 말이고,

네팔 쪽에서 히말라야를 9개의 국립공원(NATIONAL PARK)와 3개의 보존지역(CONSERVATION AREA)으로 나누어 관리하고 있는데,

그 중 세계최고봉 에베레스트(8848m)를 포함한 <SAGARMATHA NATIONAL PARK>와 <랑탕 국립공원>,

그리고 안나푸르나(8091m)를 포함하는 <ANNAPURNA CONSERVATION AREA>(안나푸르나 보존지구)가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

또한 히말라야에는 네팔 지역에만 8개의 8,000m 봉우리가 있다.

 

 

 

다양한 코스가 있지만 우리는 안나푸르나 봉을 크게 돌아가는 <어라운드 안나푸르나 트래킹>을 하기로 한다.

 

 

중앙 하단 ‘포카라’에서 부터 시계 반대 방향이 우리가 지나며 묵은 롯지가 있던 곳이다.

좌편 상단 마지막 지점에서 포카라 까지 비행기로 이동했다.

 

 

 

 

라운딩 풀 코스의 거리는 210km정도 이지만,

우리는 차량이 다니지 않는 곳을 중심으로 약 130km 코스 후에 비행기로 포카라 숙소로 돌아오기로 한다.

 

출발하는 곳은 해발 800m 정도이고 최고 해발 고도는 5400m이다.

일정은 총 13박 14일의 여정으로 출발 한다.

 

자 이제 이해를 돕는 트래킹에 대한 대략 개요는 이만하고 이제 히말라야 품으로 푹 빠져 볼까나?

 

 

 

 

 

1일차 (9/25)






















최근 몇 일 트래킹을 앞둔 우리에게 겁을 줄 모양인지 저녁마다 날씨가 심상찮다.

어제 저녁에도 비가 내리고 아침에 개이는 가 싶더니,

포카라에서 베시사르(BESI SHAHAR)까지 100km여를 로컬버스를 타고

6시간이나 가서도 부슬부슬 빗방울이 떨어진다.

 

도착해서 둘러보니 주변은 안개와 구름으로 가려져 있어, 산의 지형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역시 히말라야 쉽게 보여주지 않는군? 좋아! 너무 만만하면 재미 없지!’

하는 적당한 긴장감으로 심호흡 한번 크게 쉬고 생각으로 주변을 둘러본다.

버스에서 내리는 외국인들의 복장에서 이곳이 트래킹을 시작하는 곳임을 짐작하게 한다.

 

이곳 베시사르는 안나푸르나 1봉을 중심으로 동남쪽 아래에 있는 마을로

안나푸르나 라운드 트래킹의 출발 지점이기도 하다.

이 곳부터 걷는 사람도 있고, 16km 지점에 있는 불부레(BHULBHULE)라는 마을까지 버스를 타고 가기도 한다.

우리는 특별히 22km 지점인 상계(SYANGE) 까지  지프(JEEP)가 다닌 다는 고급 정보를 가지고 지프를 타기 위해 시도한다.

하지만 제한된 인원을 채운 지프 한대가 우리를 태우지 못한 채 출발 하더니,

다음 지프는 기약이 없어 보인다.

이번 트래킹을 도와 줄 포터 ‘풀만’이 2사람을 더 모집해야 한다는 등 기다리게 하더니,

4시간여를 기다려 하루에 한대나 운영하는 것 같은 로컬 버스가 간다고 타란다.

 

그리고 작은 로컬 버스에 짐과 사람이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빽빽이 싣고,

다시 시내로 나가 이곳 저곳을 들러 1시간 가량 짐을 싣더니,

우리가 탔던 곳에 다시 와서 산길로 출발한다.

우리가 가려는 상계까지가 차량이 다니는 가장 끝 마을이다.

불부레 까지는 버스가 1시간에 한대 꼴로 다니지만 상계까지는 하루에 한대정도 다니는 듯하다.

나중에 확인한 사실이지만 우리에게 특별한 정보를 주었던 분도 로컬 버스가 상계까지 다니는 줄은 몰랐다고 한다.

그 버스는 상계보다 더 산속에 있는 마을에 필요한 각종 생활 물자들까지 가득 싣고 달릴 수 밖에 없는 책임감이 큰 버스인 듯 하다. 

상계마을부터 물자 수송 수단은 노새(MULE)이다.

 

 

산 아래에서는 버스 지붕 위에도 짐과 사람들을 많이 싣고 다닌다.

하지만 산으로 올라가는 버스는 도로(?)의 협소함과 거친 비포장인 탓에 지붕에 짐조차 실지 않는다.

버스 복도에 짐을 가득 싣고, 그 위에 사람이 얹혀서 가는 모양이다.

그리고 뒤편에서 누군가 내리겠다고 소리치면, 차가 정차한 후에 사람을 헤치고, 짐을 밟고 휘청하며 나온다.

 

마을에 도착하기 전에 띄엄띄엄 몇 사람이 내렸는데.

차가 정차하는 곳에는 집도, 절도 보이지 않는 산 중턱 한가운데 내린다.

그들은 어디로 가는 걸까?

 

그리고 우리는 버스가 가파른 벼랑길에 매달려 달려가는 스릴과

비가 와서 움푹움푹 패인 도로가 나타나면 차장이 먼저 내려 큰 돌을 앞에 던져서

진흙에 빠지지 않게 하는 독특한 차장의 역할을 흥미롭게 지켜보며,

일찍 해가 져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벼랑길을 운전하는 동안 손전등으로 뒷바퀴를 비춰가는 야간 운전을 체험하며

20여 km를 4시간 만에 도착한다.

 

질흙같이 어두운 산속에서 주변 상가처럼 보이는 나무 건물들에 켜놓은 촛불에 의지해서

포터 풀만을 따라 가까이 있는 게스트 하우스로 들어간다.

 

히말라야 산 비탈길, 야간, 빗길 운전에 긴장된 몸과 정신이 제자리로 돌아올 틈도 없이

폭포소리가 더욱 정신을 못 차리게 멍한 상태로 방에 배낭을 풀었다.

우리를 두고 먼저 떠난 지프를 타고 온 외국인들이 여유롭게 저녁식사를 하고 있다.

그 들이 잘못한 것은 하나도 없는데, 괜히 얄밉다.

 

흔한 달밧(네팔 주식으로 밥,커리,국을 함께 담아준다.)을 시켜먹은 것 같다.

그리고 아침 출발 시간을 포터 풀만과 약속한 뒤, 찬물에 샤워하고 긴장을 풀지 못하고 잠에 든다.

 

 

 

<1일차 이동개요>

Besishar(820m) –> Syange(1100m) 

총 거리 22km이동(버스), 고도 약 300m 이동.

 

 

 

 

2일차(9/26)

 

자~ 이제 남은 13일 트래킹의 시작이다.

 

오랜 여행으로 물러진 근육과 더욱 처진 체력에 대한 걱정으로 긴 여정의 시작이 기쁘지만은 않다.

어떤 길들이 내 앞에 펼쳐질까? 히말라야는 어떤 광경들을 보여줄까?

대학 1학년 첫 미팅 장소인 카페를 들어가기 직전의 긴장과 설렘이 이랬을까?

 

바쁘게 땅만 보며 다니지 말고, 체력에 맞게 그리고 山을 흠뻑 즐겨보자고 마음을 다잡으며 히말라야에 본격 첫 걸음을 내 딛는다.

 

트래킹 시작 2일전부터 장맛비처럼 내리더니 산에서도 어김없이 오후에는 줄곧 비가 내린다.

마르지 않은 슬리퍼, 수건 등이 배낭 속에서 묵어있으니 냄새가 좋을 리 없다.

다행히 걷고 있는 낮 동안은 많이 내리지 않음에 감사한다.

 

또한 산속은 온수 사용방식이 대부분 태양열 시스템이다.

하루 종일 흐렸으니 데워진 온수가 있을 리 만무하다.

아내가 숙소를 까다로이 가스온수 시설이 있는 곳을 골랐으나 수압이 좋지 않다.

하지만 이정도 물의 양만으로도 사용할 수 있음에 감사하며,

평소에 우리가 많은 물을 불필요하게 사용하는 것 같다는 깨달음이 생긴다.

 

역시 부족함이 있어야 세상에 감사함을 생각할 수 있다는 진리를 되새긴다.

 

 

 

 

<< “나마스떼”  >>

 

 

 

 

첫인상은 그들이 사는 마을에 놀러 온 느낌이다.

대학시절 농활을 갔을 때의 기분이다.

양손에 스틱들고, 선 크림 잔뜩 바르고, 북한산 백운대 올라가듯 한발한발 긴장하고 걷고 있으면,

예쁘게 생긴 소녀가 슬리퍼 신고 내 옆을 지나간다.

조금 있으면 교복을 입은 소녀들이 까르르 웃으며, (슬리퍼 신고) 지나간다.

 

‘아직 산 초입이라 마을이 가까이 있는 탓이리라.’ 위안해 보지만

잔뜩 갖추어 입은 내 모습이 조금 어색하기도 하다.

 

나는 그들이 사는 곳에 방문한 손님이다.

나는 그들에게 열심히 웃으며 인사한다.

“나마스떼”  “나마스떼”

<나마스떼>라는 네팔 인사말은 많은 것을 의미하는 것 같다.

단순한 “안녕하세요!”라는 의미에서부터 종교적인 의미까지 포함해 “당신을 존경합니다”라는 의미까지 담고 있다고

해석하는 사람마다 의미가 조금씩 다르다.

우야튼 그들의 일상적인 인사말 임은 틀림없다.

 

그러면 그들은 내게 두 손을 가만히 합장하고 머리를 조아리며 “나마스떼” 화답해 준다.

 

그들은 이미 많은 이방인들을 보면서 생활하고 있는지라 그들과 비슷하게 생긴 한국 아저씨를 특별히 생각하지는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스틱 등으로 손으로 일일이 합장하며 머리를 조아리지 못하지만,

내가 간단히 머리를 숙이며 “나마스떼” 웃으며 인사하면,

그들은 무뚝뚝하게 걸어오다가도 해맑게 웃으며 화답하는 모습은 오래 전부터 알고 있던 손님이 온 냥 반가운 표정을 짓는다. 

 

특히 어린아이들이 고사리 손을 모으며 “나마스떼” 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어린 천사의 모습 그대로이다.

 

 

 

 

 

 

 

 

<< 신발  >>

 

 

 

 

등산화는 민박집 사장님이 빌려주셨다.

렌탈샵에서 빌리거나, 싼 등산화를 사려는 계획이었으나 마침 여분 등산화가 있어 발에도 딱 맞아서 감사히 빌려 신었다.

하지만 걷기 시작한 첫날 반도 가지 못해서 등산화가 밑창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오른발 앞 부분 밑창이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잠시 후 뒷부분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노끈을 구해 신발을 칭칭 감고 걸어보나 얼마 되지 않아 끈이 끊어진다.

 

큰일이다. 앞으로 갈 길이 먼데, 현지인처럼 슬리퍼를 신고 10여 일을 걸어야 하나?

그렇지 않으면 이대로 다시 돌아가야 하나?

이런 저런 걱정으로 트래킹이 즐겁지 않고 짜증이 난다.

 

왜 이런 신발을 빌려 주셨을까?

빌려준 사람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좋은 일하고 욕먹는 경우가 이런 경우인가?

이렇게 짜증내며 남탓을 하다, 곰곰히 생각해 보니

하지만 이것은 전적으로 내 실수이다.

사장님은 대가 없이 빌려준 친절한 잘못 밖에 없다.

여러 가지를 꼼꼼히 챙긴다고 했지만 신발에 대해서는 자세히 체크하지 못한 실수일 것이다.

상황이 안 좋아지니 남을 원망하는 나쁜 내 자신을 발견하기도 한다.

이 것도 여행의 일부로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한다고 생각하니 조금은 맘이 편해진다.

 

이런저런 생각과 걱정하며, 오늘 트래킹 중간 지점인 ‘Chamche 마을’에 도착해 점심 먹으며,

이사람 저 사람에게 상태를 보여주니,

오늘 목표 동네인 ‘TAL’에 신발가게가 있다고 한다.

걱정을 반쯤 접고, 나머지 트래킹을 남 탓하는 나쁜 습관을 스스로 혼내며 새 등산화에 대한 기대를 안고 걸어간다.

 

 

 

<2일차 이동개요>

Syange(1100m)  ->  Jagat(1300m)  ->Chamche(1430m)  --> Tal(1700m)

거리 17km, 고도 600m 이동

 

 

 

 

3일차 (9/27)

 

 

<< 쌍무지개  >>

 

 

 

 

트래킹하는 낮 동안 햇볕이 좋아서 젖은 수건 등을 말리려 일찍 숙소를 잡는다.

하지만 숙소를 결정하자 마자 날씨는 흐려지고 비가 흩뿌린다.

‘히말라야가 트래킹의 완벽한 조건은 만들어주지 않는군~’  아쉬워 할 때

숙소 주인 아줌마가 환호를 지르며 우리를 부른다.

 

저 멀리 마을 입구에 쌍무지개가 펼쳐졌다.

마을사람들이 길에 나와 쌍무지개를 보며 기도한다.

 

무엇을 기도하는 것일까?

자연의 신비로운 현상을 경외하며 존중하는 것이라 생각해 본다.

왜냐하면 <히말라야 人>들은 자연의 일부 그 자체이니까.

 

나도 얼른 사진기를 챙겨 좀 더 가까운 곳에서 쌍무지개를 촬영하려 마을 입구로 달려가 본다.

하지만 역시나 허접한 사진 솜씨로 사진은 만족할 만큼 나오지 않는다.

트래킹 몇 일전 네팔에서 수평 무지개를 찍었다고 해외 화보가 올라온 사진을 본 적이 있는데.

내가 본 것이 바로 수평 무지개와 그 위의 타원형 무지개 쌍무지개 였다.

그리 쉽게 보이지 않는 것인가?

 

본격적인 트래킹을 환영하는 히말라야의 메시지라 생각하고,

나도 <히말라야人>들을 포함한 대자연에 감사하며,

무사히 트래킹을 마칠 수 있도록 도와주길 사라진 쌍무지개에 기도해 본다.

 

 

 

 

 

<< 한국인 만남  >>

 

게스트 하우스에서 저녁을 기다리는 동안 창 밖으로 동네 골목을 할 일없이 보고 있는데

한국인으로 보이는 분이 게스트 하우스 부근을 기웃거린다.

혹시 한국인이냐고 아는 체하자 우리 게스트 하우스로 들어오신다.

 

우리는 지금 시작하는 길이지만, 그 분은 마낭까지 가셨다가 내려오시는 길이라 하신다.

일정상 급히 다니시는 분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저녁 함께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50대 초반의 나이에 기독교 선교 목적으로 카트만두에 6개월째 살고 계시고,

히말라야 지역 선교 목적으로 산길을 다니시는 듯 하다.

 

힌두와 불교를 생활 신앙으로 잘 살고 계신 분들에게 갑자기 왠 선교??

히말라야에서 자연의 일부로 자급자족 하며 잘 살고 있는 <히말라야人>들에게 십자가는 아무리 생각해도 맞지 않는 옷이란 생각이 든다.

 

하긴 남미에서 500년 전에 인디오 고대 문명을 파괴하고 침략한 스페인이 십자가를 들고 300년을 지배한 이후에

지금도 남미 곳곳에 시골 마을 전망 좋은 곳에는 십자가와 예수상이 마을 가장 높은 곳을 차지하고 있던 씁쓸한 기억마저 떠오른다.

 

튜브 고추장 등 몇 가지 물건을 주셨지만, 길게 말을 섞을 생각이 나지 않는다.

 

기독교의 배타성과 한국 기독교의 공격성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하게 된 하루다.

 

 

 

 

 

 

<<  히말라야가 신음하고 있다.(개발 문제)    >>

 

 

 

산을 오르막을 오르고 있는데 멀리 계곡에 돌 떨어 지는 소리가 산에 울린다.

그리고 세상이 진동하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지진이 나거나, 산사태가 나는 소리인 줄 알았다.

겁먹고 얼른 비탈길을 올라 멀리 오르막 끝에 있는 휴식공간에 갔다.

아내에게 산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린다고 했더니, 공사하는 소리란다.

멀리 돌이 떨어지는 곳에서 공사를 하고 있단다.

무슨 소리인지 그곳에서 계곡 너머 위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간혹 돌만 몇 개씩 떨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자세히 보니 개미보다 더 작은 모습의 사람이 움직이는 실루엣이 보이는 듯 하다.

 

좀더 지나가 보니 벌써 많은 공정이 진행되고 있었다.

 

나중에 마을 숙소에서 알아보니 안나푸르나 지역에서 현지인이 거주,생활하는 마지막 마을 마낭까지
 

도로 개설 공사를 하는 중이라고 한다.

 

어제 점심 식사 이후에 다이너마이트 폭파 작업 때문에 1시간 가량 마을에서 기다린 것도 다 그 때문이란다.

 

까마득히 계곡 높은 곳에서 인간의 힘으로 부서뜨린 바위가 계곡 일부를 가로막고,

큰 폭파 음으로 살아가는 생태계를 위협하는 차량 도로 개발이

히말라야와 고락을 함께하는 <히말라야人>들에게 도움이 되는 개발인 것인가?

생태주의라는 나의 프리즘으로 단순히 개발을 반대하는 것이 맞는 것인가?

 

스쳐가는 방문자의 입장에서 주인들이 하고 있는 일에 ‘감 놔라, 배놔라’ 하는 것도 분에 넘치는 일일 것이다.

몇 년 후 자동차 도로가 완성되고 나면, 이제 포터와 가이드의 필요가 많이 줄어들 것이다.

노새를 이끌고 생활 물자를 운반하는 몰이꾼도 수요가 없어질 것이다.

 

지금도 서쪽 좀솜 공항에서 묵틴아트까지 도로가 개설되어 있는 곳에는 도로가 없는 이곳 동편까지 오지 못하는
 

서구 중장 년 관광객들이 많이 방문한다.

도로가 완성되면 이곳도 차량을 타고 히말라야 관광을 하는 사람이 많이 증가할 것은 명약관화 하다.

 

하지만 그것이 이곳 주민 전체의 삶의 질을 높인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나는 단연코 아니라고 생각한다.

몇 사람만이 그 시혜로 지금보다 많은 돈을 만질 수는 있겠지.

그리고 내가 지금 그들의 삶의 터전을 트래킹이란 명목으로 오가며 만나고 “나마스떼”하며 눈인사하며 받는 천연의 에너지를 절대 받을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은 그들의 순수와 정기도 자본에 의해 농락당할 것도 명약관화 하다.

 

누군가는 그 개발도 나와 같이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만드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다. 나는 이곳을 찾아와 그 들의 순수한 영혼에서 에너지를 받고, 감동을 받고 가지만,

나의 행동이 그들의 순수에 때 묻히는 것 같은 죄송함도 맘 한 켠에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여러 곳에 히말라야 개발을 반대하는 국제 운동단체가 있는지 알아봐야겠다.

 

 

  

 

 

<3일차 이동개요>

Tal(1700m) –> Karta  ->  Dharapari  ->  Bagarchap  ->  Danaqyu (2200m)

거리 10km, 고도 500m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