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DINO의 날적이

여행을 위한 첫번째 이별(9.25)





심심한 추석 연휴가 지나고 집안 청소를 했다..

항상 하듯이 나는 청소기와 걸레질, 빨래 널기를 하고

마누라는 손빨래, 부엌, 화장실 청소를 한다..

 

청소기로 거실을 정리하며 문득 허전함을 느낀다..

얼마전 여행준비로 인해 키우던 화초들을 처가집에 옮겨놓기 시작했다..

다른 짐들은 이삿짐 보관창고에 맡기기로 했으나..

계속 손이가는 화초와 그림 액자등은 처가집과 큰 처남집에 맡기기로 했다..

 

벌써 두차례에 걸쳐 소철, 안시니움, 고무나무, 스파티필름을 옮겨놓았다..

소철과 안시니움도 인연이 많았던 놈들인데..

이사한지 4-5주가 지나도 그놈들의 존재감은 잊혀지고 있었따..ㅋ(섭섭하겠지만..)

몇차례 청소를 했어도 그놈들이 없음을 인식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지난주 옮긴 고무나무와 스파티필름은 몇일동안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다

오늘 청소할때는 갑자기 그놈들의 자리가 허전하니 느껴진다..

 

몇일 동안 그놈들이 보이는지 보이지 않는지도 인식하지 못하다가

지금에서야 허전하게 느껴지는 것이 조금 미안하기도 하고

현재의 내모습에 몇가지 자각을 주기도 한다..

 

그 화초들은 내 일상 주변에 항상 그 자리를 지켜주었던 놈들이다..

가끔 소홀히 하면 금새 시들해져서 왜 관심 가져주지 않느냐며 시위하고,,

고무나무는 묵묵히 커가며 많은 사람들에게 가지쳐 주변과의 인연을 더욱 공고하게 해준 인연이 있기도 한 놈이다..

그 전에 갔던 소철은 회사에서 화분이 깨져 죽었다고 생각하고 가져온놈이다..

지난 겨울 어설프게 잎을 다 잘라내고 봄이 되어도 피지 않자 우리의 무지가 죽였다고 생각하고 포기하고 있는중 어느날 기대하지 않았던 푸른 잎을 피워 끈질긴 생명력에 대한 경외를 느끼게 해준 놈이다..

안시니움도 벌써 10여년이 다 되어가는 놈이지..

고교동창 광승이 아버님의 환갑잔치에서 선물로 받아온 놈이 이렇게 끈질기게 꽃을 피웠다 졌다를 반복하며 함께 살아가는 놈이었다..

 

 

 

잠시후 이별할 벤자민

 

 

 

우리와 함께한 놈들은 사실 불쌍하게도 아주 일반적인 배려를 받지 못하고

스스로 자신의 생명력을 유지한 놈들이다..

둘의 화초에 대한 무지함과 무관심에 제대로 분갈이도 못해주고, 가지도 쳐주지 못하고,

정말로 애정없이 잘 큰 놈들이라 더욱 기특하기도 하다..

 

이런 무심한 주인이 그자리에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고 인지하지 못하다가

이제서야 청소하며 그놈들의 자리를 보며 섭섭해 한다...

그리고 현실을 깨닫게 해주는 그 놈들이 고맙다..

 

이제 떠나는 구나..

이제 일상과 이별을 하는 중이구나..

사실 1년여 여행을 준비하며 구체적인 준비를 행동으로 한 것은 화초 옮기는 일이었다..

물론 그 사이 마누라는 황열병 예방주사도 맞고 항공권 예약도 하기도 했지만,

 

떠나는구나 하는 자각을 심어준 것은 그 화초들의 빈 자리였다.

주변 친구들이나 지인들이 여러가지 걱정과 근심도 나에게는  다른 세상의 이야기 인듯하다..

하지만 함께 일상을 했던 무심함 속에서도 꾿꾿이 자리를 함께 했던 놈들과 이별을 인식도 하지 못했던 내 모습에 현실을 자각하게 된다..

이제 다음주면 식탁도 다른 주인에게 넘어가고,

남은 화분과 그림들도 맡겨질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한국에 머물 집도 없어지는

유랑인이 된다...